부용의 효능
쌍떡잎식물 이판화군 아욱목 아욱과의 낙엽관목
학명 : Hibiscus mutabilis L.
원산지 : 중국
꽃말 : 매혹, 섬세한 아름다움, 정숙한 여인, 행운은 반드시 온다.
분포지 : 한국(제주도 서귀포), 중국
개화시기 : 8~10월
크기 : 1~3m.
부용꽃은 접시꽃과 혼돈하는데 꽃봉오리 모양부터 다르다.
접시꽃의 경우 상단 일정부위 이상에서는 마디마다 꽃봉오리가 달리는데 반해,
부용화는 몇송이 피지 않는다.
잎표면에는 별 모양의 털과 잔 돌기가 있으며, 뒷면에는 별 모양의 흰색털이 밀생한다.
잎의 기부는 심장형이며 가장자리에 둥그스름한 모양이다.
꽃은 8~10월에 지름 10~13cm로서 무궁화 꽃보다 크다.
꽃색은 빨강, 흰색, 분홍, 짙은 분홍색 등이 있다.
부용
가지 윗부분의 잎겨드랑이에서 꽃자루가 나오고 꽃잎은 5장이다.
꽃받침은 중앙까지 5개로 갈라지며 선모가 섞여 있고 소포가 꽃받침 통보다 길다.
꽃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진다.
수술은 여러 개이며 원통 모양으로 합쳐 나고,
긴 암술대가 관통해 있으며, 암술머리는 5갈래로 갈라져 있다.
주로 관상용으로 정원등에 많이 식재하며,
원예종으로 흰색꽃이 피는 백화부용, 북미원산의 미국부용 등이 있다.
부용의 효능
흰색의 꽃이 점점 분홍으로 물들어 술에 취한 것 같다 하여 "취부용"이라 하기도 한다.
가지에는 돌기 모양의 부드러운 털이 나 있다.
광상용 또는 약용으로 이용된다.
잎은 부용엽, 뿌리를 목부용근으로 주로 치과, 피부과, 운동계 질환 등을 다스린다.
부용의 효능
※ 청열해독(淸熱解毒), 양혈소종(凉血消腫), 배농(排膿)
청열해독 작용이 있어 종기의 염증을 가라앉히고 통증을 낫게하며,
화상으로 인하여 피부면이 붓고 열이나며 화끈거리는 증상에 가루를 내어 환부에 바른다.
뿌리를 목부용근이라 하며 옹종, 해수, 백대하 등에 이용한다.
목부용업은 폐암, 유선암 등과 소화기계통의 암증에 복방으로 쓰여진다.
부용
미국이 원산지인 미국부용은 여러해살이풀로,
꽃은 부용과 비슷한 대륜이고 잎은 달걀꼴 타원형이다.
겨울에 노지의 지상부는 시들지만, 봄에 싹이나고 여름에 대륜의 외겹 꽃을 피운다.
꽃이 부용보다 크게 피나 꽃잎 끝에 힘이 없다.
아침에 피고 저녁에는 사그라드는 하루살이 꽃으로,
장기간에 걸쳐서 매일 차례차례로 개화한다.
둥글게 생긴 열매는 씨방이 여러개로, 노란색 털이 많이 나 있고 익으면 말라 쪼개진다.
번식은 씨, 꺾꽃이, 포기 나누기로 한다.
무궁화와 비슷하지만, 잎과 줄기가 달라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우리나라 길가에 심어놓은 것이 대부분 미국부용이며 월동이 되기 때문입니다.
부용
부용은 양귀비와 더불어 아름다운 미인을 말할 때 인용된다.
그 처럼 꽃이 곱고 화려하다.
꽃말은 "미인 또는 섬세한 아름다움"이다.
부용은 아욱과로 낙엽 반관목이며 원산지는 중국이다.
부용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다.
그렇지만 중국 송나라의 맹준왕만큼 좋아한 사람은 아직 기록에 없다고 한다.
그는 궁궐안에 다른 모든 꽃은 뽑아 버리고 부용만을 심도록 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것도 모자라, 성 안에도 부용을 심게 해서 40리에 달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도로변에서 많이 볼수 있다.
부용화의 전설...
옛날, 성천(成川)에 한 기생이 있었다.
어찌나 그 얼굴이 아름답고 몸매가 빼어났는지,
사람들은 그녀를 "부용(芙容)"이라 불렀다.
그녀는 이름이 기적(妓籍)에 올라 있기는 했지만,
사실은 시(詩)를 전문으로 지었으며,
기개를 지니고 있어서 함부로 몸을 더럽히지 않는게 부용꽃과 같았다.
그녀가 16세 되던 해였다.
성천군에서 백일장이 열렸는데,
그녀가 참가하여 당당히 장원(壯元)을 했다.
그 당시 그곳 부사(府使)는 김이양(金履陽)이라는 사람으로,
문학을 지극히 사랑했다.
부용은 김이양의 문학에 심취했다.
그래서 그녀는 이미 백발인 그와,
인연을 맺어 15년이나 되는 긴 세월을 함께 살며,
시가(詩歌)를 서로 나누었다.
김이양이 늙어서 세상을 떠나자,
3년 상을 정성껏 치른 후에 부용은 자신의 몸을 더욱 깨끗이 지켰다.
그녀 또한 늙어서 죽을 때가 되었다.
그녀는 몸을 씻은 다음,
가까운 사람을 불러서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거든 천안 광덕리(廣德里)에 묻어 달라."고 하였다.
마침내 그녀가 눈을 감으니,
사람들이 그녀를 천안 광덕리에 있는 김이양의 무덤 옆에 묻어 주었다.